
다시 깨어난 지성의 횃불, 『사상계』의 귀환
2025년 4월, 오랜 침묵을 깨고 『사상계』가 돌아왔다. 폐간 이후 무려 55년, 그리고 창간 72주년을 맞은 올해, 이 역사적인 잡지는 다시금 우리 시대를 향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단순한 복간이 아니다. 『사상계』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시대의 질문에 응답하려는 깊은 사유의 선언이다.
『사상계』는 1953년,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화의 선구자였던 고(故) 장준하 선생에 의해 창간되었다. 전후의 폐허 속에서 시작된 이 잡지는 자유민주주의, 민족 자주, 지성의 독립을 기치로 내걸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젊은 세대의 사상적 전진기지 역할을 해냈다.
『사상계』새로운 시대정신
수많은 담론이 이 지면 위에서 태어났고, 그것은 곧 시대정신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1970년 5월, 시인 김지하의 풍자시 「오적」을 게재한 것을 계기로 박정희 군사정권의 탄압을 받아 강제 폐간되었다. 시인의 표현대로 라면, 그 당시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폐간 사건은 억압의 칼날 앞에서 지성이 침묵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사라진 듯 보였던 『사상계』는 단념하지 않았다. 시대는 바뀌었고, 세대도 달라졌지만, 다시 그 이름을 부르며 깨어난 사람들이 있었다. ‘사상계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시민들과 지식인들은 이 복간을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닌, 시대적 전환의 선언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사상계』를 ‘문명 전환 종합지’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기후 위기, 생태 파괴, 디지털 문명, 미래 세대의 권리와 같은 이슈들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담는 종합 플랫폼이자 담론의 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특히, 재창간호는 매우 상징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앞뒤가 없는 ‘양면형’ 잡지로 구성되어, 전통적인 편집의 관습마저 넘어서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한쪽 면에는 2024년 말 발생한 비상 계엄 사태 등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한 정치·사회의 반성과 더불어 문명 대전환과 관련한 분석글이, 다른 면에는 생태와 살림, 공동체와 미래를 다룬 논의들이 배치되어 있다. 한 지면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고민이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사상계』유명 편집인들
편집진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보수와 진보, 정치와 학문, 환경, 생태, 문화와 실천 지성을 넘나드는 인사들이 참여한다. 이는 단일한 시각이 아닌,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열린 플랫폼을 지향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2025년에 응답한 『사상계』 DNA는 단지 정치적 비판을 위한 매체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이 시대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비전을 던지는 담론의 장으로 기능하고자 하는 시도라 볼 만하다.
『사상계』는 이제 다시 서점 매대가 아니라 구독자의 책상 위로 간다. 즉, 서점에서 판매되지 않으며, 정기 구독을 통해서만 제공된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지만, 이는 일시적 소비가 아닌 지속적 관계를 맺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더 이상 대중적 인기나 상업적 유통에 의존하지 않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와의 직접적인 연결을 통해 지성과 사유의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번 재창간은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대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지식 플랫폼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상계』는 다시 한 번 시대의 지성으로서, 우리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불이 될 것이다. www.sasanggye.com
『사상계』집단지성을 깨우다
오늘날 우리는 넘치는 정보 속에서 오히려 사유의 빈곤을 겪는다. SNS의 짧은 문장들, 가공된 뉴스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사유할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상계』의 복간은 이 같은 시대적 결핍에 대한 응답이다. 한 시대를 흔들었던 지성의 목소리가 다시 깨어난 것이다. 이 귀환이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행위로 머물지 않고, 미래를 열어가는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란다.